top of page
 

 분홍빛 봄이 초록색으로 물들어갈 무렵, 4월의 어느 날,

 새까만 털에 조금 마른 듯 한 몸, 신록 같은 빛깔의 눈동자.

 사람의 왕래가 드문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없는 곳도 아니었는데. 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고 저렇게 길 한 가운데 딱 앉아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했다. 이게 너와 나의 첫 만남.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

chapter 1. 만나고 싶었어요.

 

w. zero (@zero5zero4)

 

 

 “이 동네에 사는 거야?”

 

 카즈키는 자신을 올려다보는 작은 생명체의 앞에 쭈그려 앉았다. 살랑살랑. 가늘고 긴 꼬리가 가볍게 움직였다. 쓰다듬어도 되나? 고양이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은 카즈키는 손을 내밀다 잠깐 멈칫했지만, 도리어 고양이 쪽이 고개를 들어 카즈키의 손에 얼굴을 비벼왔다.

 

 “우왓, 간지러. 애교가 많은 녀석이구나.”

 

 자신의 팔뚝만할까 싶은 아직 어린 고양이었다. 언제 봤냐는 듯 꽤나 친근하게 카즈키의 손에 얼굴을 비비던 고양이는 아예 몸을 일으켜, 쭈그려 앉은 카즈키의 주위를 맴돌며 자신의 체취를 묻혔다. 그게 고양이에게는 살가움의 표시라는 걸 아직 모르는 카즈키는 당황하고 어쩔 줄 모르며 혹시라도 요 작은 녀석을 밟기라도 할까 노심초사하며 일어났다.

 

 “내가 마음에 드는거야?”

 

 야옹. 대답이라도 하듯 짧게 울은 고양이가 다시 카즈키의 앞에 앉았다. 뭔가를 바라는 눈치라는 걸 카즈키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카즈키는 다시 무릎을 굽히고 앉아 고양이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미안해. 내 여유 상 너랑 같이 살기는 힘들어. 다음에 또 보자, 응?”

 몸을 일으킨 카즈키는 고양이를 뒤로 한 채 다시 걸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제 집이었다.

냐-옹.

…….

냐아아.

…….

냐아-옹…….

 

 “아아아, 정말!”

 

 이리 와! 카즈키가 다시 무릎을 굽히고 앉으며 팔을 벌리고 소리치니 서럽게 울던 고양이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원래 고양이도 이렇게 사람을 잘 따르던 동물인가? 고양이는 제 품에 안겨 냐아, 냐아. 하고 그루밍을 하며 카즈키를 올려다봤다.

*

 동물병원에 가 본건 처음이었다. 여태껏 반려동물을 들인 적이 없었으니 당연했다. 생전 처음 방문해보는 곳이었다. 카즈키는 조금 어색하게 작은 가게의 문을 열었다.

 

 원장 타카하시 미나토.

접수를 마친 카즈키는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진료실로 들어갔다. 인상이 좋은 수의사 선생님이 겨우 제 품에서 떨어진 작은 고양이를 진찰할 동안 카즈키도 가만히 지켜봤다.

 

 "조금 마른 것 빼고는 다 좋네요. 기운도 넘치고요."

 "그렇군요. 다행이다."

 "이름은 정하셨어요?"

 

 아뇨, 아직……. 진찰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제 품에 안기려 드는 고양이를 카즈키가 겨우 진정시켰다. 아이가 보호자 분이 엄청 마음에 드나 봐요. 사람 잘 따르는 고양이는 종종 있어도, 이 정도는 아닌데. 그 말을 들은 카즈키는 멋쩍게 웃고 가벼운 인사를 건넨 후 다시 고양이를 안아들어 진료실을 나왔다.

 

 이름이라.

 

 귀여워……

 건강검진과 기본적인 예방 접종까지 끝낸 후, 목욕까지 하고 나온 모습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길고양이라고 생각 할 수 없을 정도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학과의 후배들, 특히 안이나 와카나가 학교에 사는 고양이들만 보면 끔뻑 죽는 게 이해가 갔다.

 

 고양이를 키우는 데도 필요한 게 많구나. 카즈키는 양 손 가득한 짐을 다시 고쳐들었다. 고양이는 모래에서 볼일을 본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고양이용 화장실에 모래에, 추천받은 사료와 아직 사료를 잘 씹지 못할지도 모르니 산 고양이용 우유, 이동장… 당장 필요한 것만 샀는데도 이만큼 이었다.

 

 대학 진학을 위해 도쿄에 온 카즈키는 학교와도 조금 떨어진 한적한 주택가에 작은 맨션을 얻었다. 썩 좋은 집은 아니었지만 미술 대학에 다니는 특성 상 학비와 재료비를 내기도 빠듯했고, 이 정도 예산으로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물론 혼자 살 때의 이야기지만. 방 안 가득한 이젤이며 캔버스며 그림도구로도 복잡한데, 갑자기 생긴 작은 가족의 짐까지 늘었으니 꽤나 비좁아졌다.

 

 집에 도착한 카즈키는 일단 집 한 켠 가득한 그림도구들을 정리했다. 평소 정리를 게을리 하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좁지만 금세 고양이의 화장실과 사료 등을 놔줄 자리는 났다. 동물병원에서 사온 고양이 화장실에, 설명을 들은 대로 모래를 붓고, 조금 떨어진 곳에 밥을 줄 그릇을 뒀다. 고양이는 죽은 사료 옆에 있는 물은 잘 마시지 않는다고 하니, 물그릇은 제 책상 옆으로 놨다.

 

 대강 배치를 마치고 나서 이동장을 열었다. 고양이는 천천히 밖으로 나오더니 그새 또 카즈키의 손에 얼굴을 비볐다. 집에 도착하고 정리를 할 동안에도 요란을 피우지 않고 얌전히 있던 게 기특해 카즈키도 한껏 쓰다듬어 주었다.

 

 이름. 이름을 지어줘야지.

 제 앞에 앉은 고양이와 마주보고 카즈키도 양반다리를 한 채 앉았다. 고양이는 제 앞에서 심각한 얼굴로 저를 바라보는 카즈키를 보며 고개를 갸웃 갸웃 했다. 귀여워…….

 

 "이름을 정해줘야 하는데. 내가 이런 쪽으론 영 소질이 없어서…."

 

 냐앙.

 야옹이, 나비, 애옹이... 흔하다 못해 진부할 정도인 이름들이 카즈키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털이 까만색이니까 네로나 까망이도... 고양이는 네로나 까망이를 중얼거리던 카즈키의 목소리에 묘하게 인상이 구겨졌다.

 

 "그러고 보니 호랑이나 사자도 고양잇과 동물 이랬나."

 

 요런 작은 동물이랑 그런 맹수들이 친척인 셈이니. 제 앞에서 까맣고 작은 발로 열심히 그루밍을 하는 고양이를 보며 카즈키가 피식 웃었다.

 타이가. 타이가로 하자. 이왕 자라줄 거라면, 건강하고 용감한 편이 좋으니까.

 

 "타이가. 네 이름은 앞으로 타이가야."

 

 타이가라는 이름을 듣자 고양이의 초록색 눈이 반짝하며 빛난 듯 했다. 작은 몸으로 제 몸을 비벼 오는 게 왠지 저도 제 이름이 마음에 든 것만 같았다.

 

 그러고 보니 목줄을 사는 걸 깜빡했네. 고양이는 영역생활을 하는 동물이니 굳이 해줄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그래도 왠지 집고양이라는 표시를 해주고 싶었다. 카즈키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의 빨간 벨벳 리본을 집어 들었다. 며칠 전 과제에 사용했던 재료였다. 적당한 길이로 리본을 잘라 타이가의 목이 억죄지 않게 아주 느슨하게 리본을 묶어줬다. 까만 몸에 빨간 리본이 썩 잘 어울렸다. 타이가도 몇 번 제 목의 리본을 건드려 보더니 금세 관심을 껐다.

 

*

 

 "잘 자. 타이가."

 

 타이가와 함께하는 첫 번째 밤이었다. 카즈키는 제 침대의 머리맡에 담요를 깔아줬다. 침대 아래에 있던 타이가는 폴짝 뛰어올라 카즈키가 깔아준 담요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말아 자세를 잡았다. 그릉그릉하는 소리를 내며 타이가가 금세 잠에 빠졌다. 고양이가 기분이 좋을 때 내는 소리라고 타카하시 선생님이 알려줬다. 카즈키도 전등의 불을 끄고 자리를 잡아 누웠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 잠이 드는 건 금방이었다.

 

 밤은 점점 깊어갔다.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며 카즈키 또한 깊은 잠에 빠져있었다. 카즈키의 옆에서 같이 잠을 자던 타이가가 침대 밑으로 내려왔다.

 

 "타이, 가."

 

 내 이름. 까만 고양이는 소년의 모습으로 변했다. 고양이의 새까만 털과 닮은 흑발의 머리카락, 눈이 부시게 맑은 초록색 눈을 가진 소년으로. 소년의 목에는 낮에 카즈키가 묶어준 빨간 리본도 매여 있었다.

 

 소년은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잠을 자고 있는 카즈키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이불 밖으로 나온 카즈키의 손을 아주 조심스럽게 만져보기도 했다.

 

 "카즈키……"

 

 소년은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고양이처럼 조용하고 기척 없는 움직임이었다. 침대에 무게가 실리자 카즈키가 약간 뒤척였으나 깨는 기색은 없었다. 타이가는 모로 누워 잠든 카즈키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 모습은 다시 고양이인 채였다. 첫 날 밤이 조용히 지나갔다.

 

 

 

chapter 2.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카즈키는 등에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제 눈앞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생각했다. 캔버스용 아트 백에서 꺼낸 서정적 느낌이 물씬 나는 그림에 정말 안타깝지만,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지만, 조금도 어울리지 않은 고양이 발자국이 꽁 찍혀 있었다.

 

 이번 주까지 제출해야 할 시험 대체 과제물이었다. 조금만 더 하면 완성이어서 오늘 수업이 끝난 후 과실에서 하고 가려고 가져온 거였는데. 카즈키의 그림에 일어난 일을 본 동기들과 후배들은 작품에게 벌어진 안타까운 일, 하지만 너무도 귀여운 안타까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리 애가 이럴 애가 아닌데…….

 

 카즈키는 생각했다. 지난 2주 동안의 타이가를. 타이가와 함께 산지도 벌써 2주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난주에는 병원에서 회충약을 받아왔었지. 약이 조금 써서 아이들이 잘 안 먹으려 하지만 좋아하는 간식을 동원해서라도 먹여야 한다고…… 타이가의 경우는? 아주 잘 받아먹었지. 투정 없이 잘 먹는 게 기특해서 간식도 배불리 먹여줬지. 주변에 고양이를 키우는 지인들은, 정말 다 좋은데 벽지를 뜯는다든지, 가죽제품을 망가뜨린다는 게 제일 문제라고 했지만. 타이가의 경우는? 전혀 없다. 발톱도 잘 깎는다.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우리 애가 이럴 애가 아닌데… 어쩐지 오늘 아침 타이가가 데면데면한 느낌이었는데. 기분 탓이 아니었나. 제출까지 3일 남았다. 하필 유화 작품이라 수정하기도 쉽지 않았다.

 

 괜찮아. 아직 3일이나 남은 거야. 과감하게 그림을 집어넣은 카즈키는 새 캔버스를 사기 위해 화방으로 달렸다.

 

 

*

 

 타이가는 불안했다. 카즈키가 잠을 자지 못한지 이틀 째였다. 아마도, 이건 자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밤, 잠이 오지 않아 집 여기저기를 뛰어 돌아다니던 타이가는 카즈키가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물감을 밟고 그대로 캔버스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캔버스의 꺼끌한 느낌이 자신의 발바닥에 닿는 순간 타이가는 화들짝 놀랬다. 이 이상한 느낌의 판은, 자신도 잘 아는 거였다. 카즈키가 몇 날 며칠을 이 그림을 붙들고 있었는지. 이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히 카즈키에게 중요한 것이라고, 그림을 그리느라 정신이 없는 카즈키를 바라보며 생각했었다.

 

 어떡하지. 카즈키가 열심히 하던 거였는데. 지금 카즈키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캔버스 주위를 맴돌던 타이가는 사람의 모습으로 됐다가, 고양이의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도 알 수 없었다. 카즈키가 했던 모습을 따라해 보려고 붓을 쥐기도 했지만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금방 떨어뜨렸다.

 

 그 일이 있은 뒤부터 카즈키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자신에게는 변함없이 상냥하고, 자신을 예뻐해 줬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계속 그림을 붙들고 있어야 했다. 타이가는 그런 카즈키를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고 있었지만 카즈키도 눈치 채지 못했다.

 

 새벽 세시를 넘겼을 때부터, 카즈키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들고 있던 붓도 떨어뜨리고 옆으로 넘어지려는 걸 타이가가 잡았다.

 

 누구지. 제 몸을 잡고 있는 따뜻함을 느꼈지만 눈꺼풀이 너무 무거웠다. 결국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알고 있는, 따뜻함인데.

 

 카즈키를 번쩍 안아 든 타이가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혔다. 잠을 자지 못해 수척해진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입술을 핥았다. 까끌까끌한 혀의 느낌에 카즈키가 조금 움찔했다. 미안. 미안해요. 타이가도 늘 그랬던 것처럼 카즈키의 머리맡에서 몸을 말아 잠을 청했다.

 

*

 

 내가, 침대에서 잠을 잤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오전 아홉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카즈키는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근 3일을 못 잔 것 치고는 아주 상쾌했다.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오전 수업이 교수님의 사정으로 인해 휴강됐다는 메일이 와 있었다. 과제는 오후 여섯시까지 제출하면 됐었다. 턱없이 부족한 기간 치고는 꽤나 마음에 들게 진행됐었고, 이정도 라면 문제없이 제출 가능했다.

 

 타이가는 어디 갔지? 일어나면 언제나 옆에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집 안을 두리번거리니 캔버스의 이젤 옆에서 자고 있는 타이가가 보였다. 왜 저기서 자고 있는 거야. 왠지 밤새 그림을 지키다 골아 떨어 진 것 같은 모양새에 카즈키는 그만 웃고 말았다.

 

 

 

chapter 3.

 

 

 

 묘하게 덥고, 답답한 느낌을 받은 카즈키가 잠에서 깼다. 달빛이 환하게 들어와 불을 켜지 앉아도 눈을 껌뻑껌뻑 몇 번 감았다 뜨니 제법 시야가 트였다. 카즈키는 제 옆에 자고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응?

 남자?

 

 “우와아아아악!!!”

 

 카즈키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누구야 이 남자. 남자라고 하기엔 앳되어 보이는 얼굴의 소년이었지만 아무튼 지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생판 모르는 남자가 제 침대에서 저와 자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도둑? 강도? 조그만 머리로 쉴 새 없이 이런 저런 생각이 오갔다. 카즈키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란 평가 아닌 평가를 많이 들어왔지만 방금 자다 깼는데 수상한 남자와 마주쳤다는 특이한 상황에서는 장사 없는 듯 했다. 카즈키의 비명 소리에 놀란 남자도 부스스 일어났다.

 

 “누, 누구세요. 왜, 제, 침대에서.”

 

 새까만 머리카락에 얇고 품이 큰 티셔츠를 입고 있는 남자는 아직 상황 파악이 덜 된 듯 했다. 눈을 몇 번 더 깜빡이다가 고개를 들어 카즈키를 바라봤다.

 

 “…카즈키……?”

 

 내 이름도 알아?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잠에 취한 목소리에 당황한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제 목소리를 듣자 깜짝 놀란 듯 양 손을 들어 제 얼굴을 더듬댔다. 이럴 때가 아니야. 일단 불을 좀 켜고, 아니 그 전에 핸드폰, 아니, 손에 뭐라도 들어야 하나. 카즈키는 일단 침대 밑으로 펄쩍 뛰어 내려가 방의 불부터 켰다. 남자와 등을 지고, 잠시 전등을 켜는 그 찰나에.

 

 “어?”

 

 남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침대 위에 있는 건 예쁘게 앉아 자신을 바라보는 타이가 뿐 이었다.

 

 “타이가……?”

 

 냐, 냐옹.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울음소리가 울렸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카즈키는 스스로도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는 자신의 머리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런데, 아까도 타이가가 있었나? 늘 자신의 머리맡에서 몸을 말고 자던 타이가였는데. 없었던 것 같은데. 진짜로? 말도 안 돼. 여우도 아니고. 여우여도 말도 안 되지만.

 

 “타이가, 너 혹시.”

 

 방금 전의 소동으로 작은 먼지가 폴폴 날리는 게 눈에 보였다. 그 중 하나가 타이가의 코를 간질였고, 푸엣치. 고양이도 사람이랑 똑같이 재채기 하는구나. 라는 여유로운 생각을 할 틈은 없었다.

 

 퐁. 하는 소리는 물론 나지 않았지만. 왠지 그런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정말 퐁, 하고. 작고 귀여운 타이가가 아까 그 남자로 바뀌었다. 타이가처럼 새까만 머리카락에, 타이가처럼 시리도록 맑은 초록빛깔의 눈에, 제가 매줬던 빨간 리본을 하고 있는, 피부가 새하얀 소년으로.

 

 “너, 너….”

 

 나가!!!!!!!!!!!!!!!!!!!!!!!!!!!!!!!!!!

 

 거의 멱살을 잡고 끌고 나간 카즈키가 정체불명의 소년을 밖으로 내쫓은 뒤 현관문의 잠금장치를 죄다 걸어 잠갔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뛰었다. 여태껏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웬 남자와 같이 산 셈이었다. 자기가 잘 때마다 그렇게 항상 잤던 건가? 말도 안 돼. 애초에 고양이가 사람으로 변하다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 카즈키는 스스로 제 뺨을 꼬집어 봤지만 돌아오는 건 따끔한 통증 뿐 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동물 병원에 데리고 가야하나? 동물 병원인가? 그냥 병원에 가야하나? 방송국에 전화라도 해야 하나? 말도 안 되는 얘기 하지 말라며 문전박대 당할 게 뻔한데. 그랬다가 이상한 연구소 같은 데라도 끌려가면 어떡해. 그래도 역시 나 혼자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 어디든 전화해서……

 

 …….

 “타이가…?”

 

*

 

 그날 밤은 꼬박 지새웠다. 모처럼의 연휴였고, 할 일도 많았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과제도 해야 했고. 떨어진 타이가의 새 사료도 사러 갔어야 했는데. 누워있다 벌떡 일어나기를 새벽 내내 반복한 카즈키는 날이 서서히 밝아 오자마자 밖으로 뛰쳐나갔다.

 

 동네를 이 잡듯 뒤졌지만 타이가는 없었다. 길 가던 사람들에게 요만한 고양이나 아니면, 머리가 까맣고 초록색 눈의 남자를 봤냐고 물었지만 보지 못했다는 답변 뿐 이었다. 하루 종일 뛰어 다니며 옆 동네까지 찾았지만 타이가를 만날 수 없었다.

 

 연휴 내내 비가 왔다. 카즈키는 감기에 걸렸다. 잠도 제대로 못자고 여기 저기 쑤시고 돌아다닌 건 아무리 건강하기로 정평이 난 카즈키였지만 꽤나 무모한 일이었다. 소식을 들은 동기 히로와 코우지도 함께 찾아줬지만 소식은 없었다.

 

 카즈키는 꼬박 이틀을 앓았다.

 

 5월 5일. 새벽까지도 내리는 비에 꽤나 이른 시간이지만 카즈키가 눈을 떴다. 이틀 내내 코우지와 히로의 간병을 받았으니 연휴가 끝나고 학교에 가면 제대로 인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며칠 째 비가 내리는데. 밥은 먹고 다니는 걸까. 물도 무서워하는데. 어디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건 아닌지. 카즈키는 몸을 일으켜 창밖을 내다봤다.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미열이 조금 남아있어 조금 몽롱했다. 이제는 꽤나 빗발이 약해진 채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한 번만 더.

 

 외투를 대충 챙겨 입은 카즈키가 밖으로 나왔다. 땅이 다 젖어 뛸 때마다 찰팍 찰팍 하는 소리가 났다. 슬리퍼에 물이 들어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카즈키는 타이가와 처음 만났던 곳으로 달렸다.

 

 “하아, 하아.”

 

 우산을 썼지만 달려온 탓에 바지 밑단이 다 젖어버렸다. 도착한 곳엔 아무도 없었다. 이럴 줄 알았어. 무슨 기대를 한 거야. 이렇게 비가 오는데 있을 리가 없잖아. 괜히 뛴 탓에 머리만 더 어질어질 해졌다.

 

 “빨리 집에 가야지….”

 “네.”

 “우왁!”

 

 카즈키는 화들짝 놀래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봤다. 까만 머리카락은 비에 잔뜩 젖어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꾀죄죄한 얼굴과 옷가지들. 제가 매줬던 빨간 리본. 이렇게 보니 저보다 키가 조금 더 큰 것 같은, 타이가.

 

 “너, 너, 너 타이가 맞지? 너 여태까지 어디 있다가. 밥은, 밥은 먹었어? 물은? 계속 비 왔는데 춥지는 않았어? 얼굴이랑 옷이 이게 다 뭐야. 손에 든 건 또 뭐고. 미안해. 그렇게 내 쫓는 게 아니었는데. 내가 너무 당황해서, 너무 놀라서, 그러니까. 어디 다친 덴 없어? 신발도 안 신었잖아. 이리 봐봐. 진짜 어쩌려고 이러고 다녔어. 아픈 데 없어? 내가 미안…….”

 “카즈키.”

 

 어느새 제 앞으로 불쑥 다가온 타이가가 카즈키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댔다.

 

 “카즈키. 열나요.”

 

 타카하시 선생님, 보러가요? 아니 나는 사람이라서… 그보다 너 정말 어디 있었어. 내가 얼마나, 한참 찾았는데 코빼기도 안 보이고…….

 

 “오늘, 카즈키 생일이라서.”

 

 생일선물, 하고 싶어서. 타이가는 품에 안고 있던 것들을 카즈키에게 보여줬다. 아직 덜 익은 산딸기, 풀꽃들, 알 수 없는 버섯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여기는 산도 없고. 꽃들도 별로 없어서. 찾는 데 오래 걸렸어요.

 

 “저를, 기다렸어요?”

 “…….”

 “많이 찾았어요?”

 

 우산을 내 던진 카즈키는 타이가를 꽉 안았다. 고양이처럼 따끈따끈한 체온이 느껴졌다. 카즈키의 품에 안긴 타이가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후두둑 떨어뜨리곤 똑같이 카즈키를 끌어 안았다.

 

 집에 가자.

 

chapter 3. 생일 축하해요. 終.

 

 

*

 

Epilogue.

 

 “그러고 보니, 타이가의 생일은 언제야?”

 

 생일? 고양이용 털실로 장난을 치던 타이가가 카즈키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사람의 모습일 때도 저런 물건에 흥미를 느끼는 구나.

 

 “5월 5일?”

 “아니 그건 내 생일이고…….”

 

 타이가의 생일 말이야. 타이가가 태어난 날. 카즈키는 풀꽃들이 꽂힌 화병에 물을 갈며 말했다. 제 생일에 타이가가 가져다 준 꽃들이었다. 시간이 꽤나 지났는데도 아직 싱싱하고 예뻤다.

 

 “모르겠어요. 내 생일은. 있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안 나요.”

 

 그렇구나. 사람 일 때의 타이가의 모습은 아직 덜 자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 정도의 느낌이었다. 고양이의 나이는 사람과 다를 텐데. 타이가도 금방 자라는 걸까? 사람인 모습도 있으니 사람이랑 비슷하게 자라는 걸까. 지능 이라든지, 그런 건 어린아이 같기도 한데. 좋고 싫은 게 분명하단 말이지, 솔직하고…. 고양이랑 사람 반반의 모습도 가능한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끝도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카즈키의 얼굴을 타이가가 한참을 바라봤다.

 

 “카즈키가, 정해주세요.”

 “응?”

 “제 생일.”

 아 생일. 생일 얘기를 하고 있었지. 보통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하더라. 반려동물의 생일을 잘 모르는 주인들의 경우 처음 데려온 날을 생일로 하는 것 같던데. 타이가와 처음 만난 날이 언제였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병원 진료 기록을 보면 알 것 같기는 한데…….

 “카즈키랑 똑같은 날 하면 안 돼요?”

 “어?”

 안 될 건 없지만. 그래도 뭔가 제대로 축하해주고 싶단 말이지.

 “그러면 5월 4일로 하자!”

 “5월 4일?”

 “내 생일 전 날 이기도 하고. 음 딱히 이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 생일이랑 같아도 괜찮지만, 역시 타이가의 생일을 오롯이 축하해주고 싶어서.”

 

 카즈키는 5월 4일이 제 생일이라는 걸 돼내는 타이가의 모습을 바라봤다. 사실 다른 이유도 있지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시선을 빼앗겨 버린 저 초록색 눈 때문에.

 

 “괜찮은 것 같아?”

 “네.”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와 앉은 타이가는 손에 얼굴을 비볐다. 사람의 모습이어도 고양이의 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나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최근엔 고양이보다 사람의 모습으로 하고 있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은데. 이쪽이 더 편한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카즈키가 해주는 거라면 뭐든 좋아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한 건 취소다. 역시 조금 위험할 것 같아. 카즈키는 묘하게 달아오르는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이 고양이를 키운다는 건 꽤 엄청난 일이 될 것만 같았다.

bottom of page